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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용의 출현 (학익진, 거북선, 지장)

by yooniyoonstory 2026. 4. 10.

한산 영화 포스터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극장에 간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정반대였습니다. 이길 것을 이미 알면서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개봉 첫 주에 좌석을 예매했습니다. 한산도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이자 전 세계 해전사에서도 손꼽히는 전투입니다. 결말을 알고 있었는데도 가슴이 뛰었다는 게, 돌이켜보면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익진, 알고 보면 훨씬 더 무섭다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이 구사하는 핵심 전술은 학익진(鶴翼陣)입니다. 학익진이란 말 그대로 학이 날개를 펼친 형태로 함대를 배치하는 포위 전술인데, 적선을 중앙으로 유인한 뒤 양쪽에서 집중포화를 퍼붓는 방식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냥 '반원 대형' 정도로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이 대형이 얼마나 유지하기 어려운 전술인지는 영화를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학익진의 결정적인 약점은 대형 유지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넓게 퍼진 형태이기 때문에 한 곳만 뚫려도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거친 물살 위에서 각 함선이 대형을 유지하며 동시에 포를 발사하려면 고도의 훈련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영화에서 이 훈련 과정과 반복 실패 장면을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히 화려한 해전 장면만 기대하고 갔다가, 오히려 전술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더 몰입했으니까요.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가 이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설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 역사 기록에서도 와키자카는 한산도대첩 한 달 전 용인 전투에서 기습 전술로 조선군을 격파한 장수입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영화는 이 인물의 전략적 감각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하는데, 이순신과 와키자카의 수 싸움이 사실상 영화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장수의 전략 대결 구도가 있기에 한산도대첩이 단순한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치열한 드라마로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 학익진이 완성되는 순간의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거북선의 돌격으로 적 진형을 흐트러뜨린다
  • 혼란에 빠진 왜선이 포위망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 학익진 대형을 유지한 판옥선(板屋船)들이 집중포화를 개시한다

이 세 단계가 맞물리는 장면은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봤더라면 훨씬 강렬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습니다.

거북선이 만들어낸 공포, 그 설계자 나대용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시선을 뗄 수 없었던 캐릭터는 사실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거북선 설계자 나대용이었습니다. 배우 박지환이 연기했는데, 거북선을 완성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장면들에서 묘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거북선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병기가 아닌 심리전의 핵심 도구로 묘사됩니다. 실제로 거북선의 전술적 가치는 물리적 파괴력보다 적군이 느끼는 공포감에 있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돌격선(突擊船)으로서의 거북선이란, 적진 한가운데를 직접 돌파하여 적의 사기를 꺾고 진형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맡은 함선입니다. 속도와 방어력을 동시에 갖춘 이 설계 때문에 왜군이 거북선이라는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영화 오프닝에서 거북선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팔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은 CG와 음향이 합쳐져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지만, 그 기반에는 실제 역사가 주는 무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설계도 탈취 위기라는 극적 장치도 있었는데, 이 부분이 전반부 긴장감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판옥선(板屋船)은 거북선과 함께 조선 수군의 주력 함종입니다. 판옥선이란 선체 위에 판자로 된 상부 구조를 얹은 형태의 전투함으로, 노군과 전투원을 분리해 전투 효율을 높인 구조가 핵심입니다. 이 함선의 높은 선체 구조 덕분에 왜군이 배 위로 올라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고, 조선 수군이 일방적인 포격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출처: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영화에서 판옥선들이 일렬로 도열하며 포를 발사하는 장면을 보면, 왜 이 전투가 해전사에서 전략적 승리의 교과서로 불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지장(智將)으로 그린 이순신, 박해일의 선택

이번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이순신 장군의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한산에서는 지장(智將), 즉 지혜로운 장수로서의 이순신을 그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장이란 용맹함보다 전략적 사고와 냉철한 판단으로 전투를 이끄는 장수를 뜻합니다. 그에 비해 명량에서는 용장(勇將), 즉 한없이 용감한 장수로서의 면모를 최민식 배우가 표현했죠.

그래서인지 박해일의 이순신은 시기상 더 젊은 시절임에도 오히려 덜 움직이고 더 많이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캐릭터 해석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오히려 조용한 눈빛과 절제된 몸짓이 묵직한 긴장감을 만들어냈습니다. 박해일 배우가 처음엔 전작의 부담감으로 출연을 거절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스크린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활 쏘는 장면은 최종병기 활에서 함께 작업한 감독과 배우의 호흡이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손현주 배우의 원균 역할도 제대로 밉상이었는데, 단순히 악역이 아니라 당시 조선 군 내부의 갈등과 구조적 문제를 상징하는 인물로 읽혔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규모와 전력에 관해서는 학계에서도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산도대첩에서 이순신이 보유한 거북선이 단 두 척이었다는 점은 이 전투가 얼마나 정밀한 전략 설계 위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결말을 이미 알고 있어도 충분히 긴장되고, 보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는 작품입니다. 해상 전투 장면만 봐도 본전은 뽑는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이어지는 3부작의 흐름을 함께 따라가고 싶다면, 명량과 한산을 순서대로 보고 가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역사를 알고 봐도, 모르고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X88HyEPd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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