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년 실제 발생한 여객기 납치 사건.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VIP 쿠폰을 소진하려고 이번 주 내내 영화관을 들락거렸는데, 일요일 저녁에야 겨우 이 글을 씁니다.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앉았다가 나름 복잡한 감정으로 극장을 나온 작품입니다.
실화 배경과 시대적 맥락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에 실제로 일어난 국내 여객기 납치 미수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화는 1969년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주인공 태인이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활동하던 시절, 여객기 한 대가 북으로 향하는 상황을 목격하는 장면이죠. 그 여객기 기장이 자신의 선배였고, 하이재킹(항공기 납치, 즉 비행 중인 항공기를 무력으로 탈취하는 범죄 행위)을 당한 것을 감지하면서도 결국 격추 명령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너무 작위적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1969년에도 유사한 납치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2년 간격으로 이런 일이 두 번이나 벌어졌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영화 속 납치 동기도 흥미롭습니다. 범인 김용대는 단순한 정치범이 아니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북으로 끌려간 형이 인민군 장교가 되어 잘 살고 있다는 소문, 그리고 비행기를 끌고 월북하면 인민 영웅이 되어 200만 달러를 받는다는 전단(선전물, 즉 상대 진영의 심리를 흔들기 위해 살포하는 선동 인쇄물)을 실제로 믿었던 것입니다. 냉전 체제(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군사적·이념적 대립 구도)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착각이었던 셈입니다.
당시 한반도의 정치적 긴장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은 북한의 대남 도발이 집중된 시기로, 1968년 한 해에만 북한의 무력 도발 횟수가 수백 건에 달했습니다(출처: 국방부).
영화의 긴장감, 기대만큼이었나
제가 직접 보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실화가 주는 무게감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자체의 연출이 그 무게를 온전히 받쳐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습니다.
항공 스릴러 장르에서 핵심은 밀폐 공간 긴장감입니다. 여기서 밀폐 공간 긴장감이란 좁고 탈출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인물들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압박감을 말합니다. 다이하드 2나 플라이트 플랜 같은 작품들이 이 공식을 잘 살려낸 대표 사례입니다. 하이재킹도 그 가능성은 충분했습니다. 좁은 기내, 폭탄, 무장 납치범, 그리고 북한 전투기까지 출격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다 보면 의문이 자꾸 생깁니다. 왜 저 많은 승객들이 한 명의 납치범에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나, 싶은 장면이 몇 번이고 나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영화에서 관객이 납치범을 위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순간, 긴장감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안타깝게도 하이재킹은 그 선을 몇 번 넘어버렸습니다.
배우 여진구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아역 출신으로 꾸준히 성장해 온 배우라 개인적으로는 호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굵은 목소리에 사투리, 거기에 극도로 흥분한 상황이 겹치면서 대사 전달력이 많이 흐려졌습니다. 저는 몇몇 장면에서 자막이 필요하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기장 태인이 만신창이 상태에서도 조종간을 잡고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장면, 그리고 승무원이 "59명 전부 무사합니다"라고 외치는데도 대답 없는 기장의 모습. 그 장면에서는 솔직히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이재킹에서 아쉬웠던 점과 인상적이었던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납치범의 위협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않아 긴장감이 반감됨
- 일부 대사의 완성도가 낮아 배우들의 연기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함
- 후반부 기장의 희생 장면은 실화의 무게감을 제대로 전달함
- 영화 엔딩 크레딧의 실제 비상착륙 비행기 사진은 그 자체로 충격적
실화와 영화 사이, 아쉬운 부분
이 영화가 조금 더 아쉬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소재가 너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 59명의 승객을 살린 실존 기장, 그리고 그가 남긴 이야기는 어떤 각색 없이도 충분히 드라마틱합니다. 제 경험상 실화 기반 영화가 각색 과정에서 오히려 힘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하이재킹이 딱 그런 경우였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실제 비상착륙 당시의 비행기 사진은, 제가 영화 내내 느꼈던 아쉬움을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저 사진 한 장이 100분의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납치 사건에서 승객 대부분은 협상을 통해 귀환했지만, 특수 기술 보유자로 분류된 조종사 등 일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납치 이후 피해자들의 귀환 과정과 관련한 자료는 대한적십자사의 기록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대한적십자사).
제가 정보를 일부러 찾아보지 않고 영화를 보러 갔던 것은, 결말을 모르는 채로 기장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것이 실화라는 사실이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영화로서의 완성도에는 분명히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1971년에 실제로 있었던 그 사건 자체, 그리고 그날 하늘 위에서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던 기장의 이야기는 기억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아직 이 사건을 모르는 분이라면,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한 번쯤은 찾아볼 만한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