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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선거판, 이상과현실, 지역감정)

by yooniyoonstory 2026. 4. 30.

킹메이커 영화 포스터


개봉 전부터 기대하고 기다렸던 영화인데, 솔직히 이런 경우 대부분 실망으로 끝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킹메이커는 달랐습니다. 보고 나서도 기분이 좋았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대사 몇 개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 영화가 이 정도 밀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1960년대 목포, 그 선거판의 온도

킹메이커는 2021년에 개봉한 한국 정치 드라마 영화입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과 선거 전략가 엄창록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영화 속 김운범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창대는 엄창록을 모델로 한 인물입니다. 엄창록은 당시 선거판에서 '선거판의 여우'라 불렸던 인물인데, 이 별명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얼마나 적확한 표현인지 느끼게 됩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70년대 한국은 관권선거(官權選擧)가 일상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관권선거란 행정 조직이나 공권력이 특정 후보를 지원하거나 야당 후보를 방해하는 방식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공화당이 경찰과 손을 잡고 야당 참관인을 물리치고, 선물을 뿌리며 민심을 샀다는 장면들이 그냥 극적 연출이 아니라 실제 기록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저는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1960년대 지방 선거 현장이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선거법의 역사를 보면,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한 공직선거법이 1994년에야 현행 체계로 정비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그 이전의 선거판이 얼마나 혼탁했는지를 영화는 꽤 사실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영화 속에서 서창대가 구사하는 전술들을 보면,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가 핵심입니다. 프레이밍 효과란 동일한 사실이라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인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공화당이 뿌린 선물을 신민당 이름으로 바꿔치기하거나, 도둑을 잡은 게 오히려 도둑이 된 것처럼 역공하는 장면은 그 전형적인 사례였습니다.

이상과 현실, 두 남자의 정의가 엇갈리는 지점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김운범과 서창대의 대립 구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목적이 옳으면 수단은 어느 정도 정당화된다'는 논리가 정치판에서는 통용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그 전제를 정면으로 흔듭니다.

김운범은 "수단이 목적을 삼켜버리면 그건 욕심"이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독재 세력이 민중을 거짓으로 휘두르는 게 싫어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똑같이 민중을 거짓으로 움직이면 무엇이 달라지냐는 뚝심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캐릭터는 영화에서 순진하거나 답답한 인물로 그려지기 십상인데, 킹메이커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정치적 강점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있어서 인상 깊었습니다.

반면 서창대는 정반대입니다. 이기지 못하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현실주의(Realpolitik)적 세계관을 가진 인물입니다. 현실주의 정치란 이상이나 도덕보다 권력과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관점을 뜻합니다. 처음에 서창대가 구사하는 술수들은 분명히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욕심이 끼어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술수들이 점점 공허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방법인데 전혀 다른 결이었습니다.

조우진 배우님의 연기가 이 변화를 정말 잘 담아냈습니다. 수리남에서 '변기태'를 보고 나서 이 영화를 봤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그림자'라는 별명을 들을 때의 표정과, 욕심이 생긴 뒤 같은 별명을 들을 때의 표정이 달랐습니다. 같은 단어가 처음엔 역할이었고, 나중엔 상처였습니다.

킹메이커를 보면서 제가 가장 집중했던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서창대의 정의감과 욕망이 교차하는 순간들
  • 김운범의 뚝심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 두 사람의 균열이 생기는 구체적인 지점

이 세 가지를 의식하며 보면 영화의 밀도가 훨씬 다르게 느껴집니다.

지역감정이라는 균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시작됐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지역감정이 특정 선거 전략으로 의도적으로 설계됐다는 장면이 나왔을 때, 저는 꽤 오래 멍하니 있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갈등이 그 오래전부터 정치적으로 심어졌다는 게 영상으로 보이니 그냥 '어이없다'는 말 외에 뭐가 더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지역주의 투표 행태(Regional Voting Behavior)는 한국 정치 연구에서 오랫동안 분석되어 온 핵심 변수입니다. 지역주의 투표 행태란 후보자의 정책이나 역량보다 출신 지역을 기준으로 지지하는 투표 패턴을 말합니다. 1987년 대선 이후 본격화된 이 현상이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위적으로 조장됐을 가능성을 영화는 제시합니다. 한국 정치학계에서도 지역주의의 역사적 기원에 관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져 왔는데, 정치 엘리트에 의한 하향식 동원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정치학회).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의구심은 이겁니다. 그들의 대의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독재에 맞선다는 대의는 분명했는데, 지역을 갈라치기해서 표를 얻는 순간 그 대의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옳은 편에 있다고 해서 모든 방법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라는 걸, 이 영화는 불편하게 짚어줍니다.

그리고 참 씁쓸했던 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지역감정의 뿌리가 한 사람의 선거 전략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사람들이 서로를 갈라서 봤던 게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갈등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한 편이 이런 질문을 남긴다는 게 저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정치 영화가 무겁고 지루할 거라는 편견이 있다면, 킹메이커는 그걸 뒤집기에 충분한 영화입니다. 두뇌 싸움과 인물 간의 균열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더 강하게 추천드립니다. 보고 나서 "내가 믿는 정의는 어디서 오는 건가"라는 질문이 생긴다면, 그게 이 영화가 의도한 바일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RPu_RvPX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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