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도 처음 토토로를 봤을 때는 그냥 귀여운 숲 속 정령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작 과정과 설정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이 작품이 얼마나 치밀하게 기획되고 또 얼마나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새삼 놀랍더군요. 1988년 개봉 당시 극장 수입은 겨우 제작비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지브리를 상징하는 대표 캐릭터가 된 토토로. 이 뒤에는 10년간의 거절과 각본 수정, 그리고 미야자키 감독의 집요한 고집이 숨어 있었습니다.
10년간 거절당한 기획, 그리고 120억 제작비의 모험
이웃집 토토로는 1970년대 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동화 '도토리와 살쾡이'에서 영감을 받아 처음 기획한 작품입니다. 여기서 '도토리와 살쾡이'는 일본의 전래동화로, 숲 속 동물들과 인간이 교감하는 판타지 요소가 담긴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해 자연과 인간의 친화라는 주제를 다룬 원형적인 작품이었죠. 하지만 당시 배급사 측에서는 "캐릭터의 별 매력이 없네요"라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미야자키는 다시 한번 토토로 제작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이런 판타지물은 사람들이 잘 안 볼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또다시 거절당했습니다. 제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포기했을 겁니다. 그런데 미야자키는 결국 1988년, '반딧불이의 묘'와 공동 상영이라는 조건으로 토토로를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제작비는 약 120억 원이 투입되었는데, 1988년 당시 극장 수입은 그 절반인 61억 원 정도에 그쳤습니다(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아카이브). 상업적으로는 실패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이후 일본의 국민 프로그램이었던 금요 로드쇼에서 토토로가 방영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약 210만 개의 토토로 인형이 판매되었고, 지브리는 이를 기념해 토토로 캐릭터를 회사 심벌 마크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과정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극장 흥행만 보면 분명 실패작이었는데, TV 방영 이후 캐릭터 상품으로 대역전을 이룬 케이스거든요. 제작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을 겁니다.
초기 각본의 전쟁 설정과 러닝타임 늘리기
이웃집 토토로의 초기 각본은 지금과 전혀 달랐습니다. 본래 인간과 토토로 부족의 전쟁으로 인해 토토로가 멸종 위기에 처하고, 현대에 들어서 마지막 남은 토토로가 등장한다는 내용이 구상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토토로 부족'이란 토토로라는 종족이 과거에는 여럿 존재했으나 인간과의 갈등으로 사라졌다는 설정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멸종 위기종 컨셉이었던 거죠.
하지만 미야자키는 이 설정이 일상물로 기획된 토토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삭제했습니다. 대신 이 설정은 후에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폼포코를 본 적이 있는데, 개발로 인해 서식지를 잃어가는 너구리들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아마 토토로 초기 각본의 전쟁 설정이 그쪽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러닝타임 조정 과정입니다. 이웃집 토토로는 본래 '반딧불이의 묘'와 함께 60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먼저 반딧불이의 묘 러닝타임을 88분으로 늘렸고, 미야자키 역시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한 명이었던 주인공을 사츠키와 메이 두 명으로 분산시켰습니다. 그 결과 토토로는 86분으로 완성되었죠.
그런데 포스터를 보면 단 한 명의 소녀만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두 명을 전부 세우면 그림이 살지 않는다는 미야자키의 제안으로, 사츠키와 메이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합쳐 단 한 명의 소녀로 그렸다고 합니다(출처: 애니메이션 학회 연구자료).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신기했습니다.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확실히 두 자매의 특징이 섞여 있거든요.
- 사츠키와 메이는 각각 일본어와 영어로 5월을 뜻합니다
-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 5월입니다
- 주인공 가족이 이사 온 별장은 원래 결핵 환자 요양을 위해 지어진 미완성 건물이었습니다
토토로 괴담 논란과 미야자키의 공식 해명
영화가 개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사츠키와 메이는 사실 토토로에게 홀려 목숨을 잃었다", "토토로는 가족을 잃은 아버지의 망상"이라는 괴담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작중 영화 후반부 사츠키 자매의 그림자가 없는 장면이나, 메이가 실종된 장면 등이 근거로 제시되었죠.
여기서 '괴담'이란 작품 속 특정 장면이나 설정을 근거로 원작과 다른 어두운 해석을 덧붙이는 도시전설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팬들이 만들어낸 2차 창작 음모론 같은 거죠. 저도 예전에 이 괴담을 처음 접했을 때는 솔직히 좀 섬뜩했습니다. 그만큼 설득력 있게 퍼졌거든요.
하지만 지브리 측에서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이웃집 토토로는 어떤 사건과도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사츠키 자매의 그림자가 없었던 이유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생략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 역시 메이가 실종된 장면에 대해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구상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괴담은 전부 루머로 확인되었죠.
제가 직접 영화를 다시 봤을 때도, 토토로는 순수한 자연의 정령이자 아이들의 상상 속 친구로 해석되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습니다. 감독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자연과 인간의 친화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면, 토토로는 겉으로는 밝고 개구쟁이 같지만 속으로는 아픈 엄마를 걱정하는 여린 자매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기 위해 등장한 존재입니다. 시골로 이사 온 순수한 자매가 자연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정령을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슬픔과 걱정을 치유해 간다는 설정이 훨씬 설득력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굉장히 편하고 풍요롭다는 감정이 물씬 느껴집니다. 등장인물들의 디테일한 표정과 시골 배경을 다채로운 색감의 손그림체로 표현하고, 여기에 히사이시 조의 OST를 적극 활용해 풍부한 감정과 생동감을 그대로 연출해 냈죠.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편안함을 주면서 사츠키와 메이의 순수한 감정이 풍부하게 전달된 이유는 작화와 연출, OST가 좋은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 정도 완성도의 손그림 애니메이션은 요즘 찾아보기 정말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