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 아줌마가 비행기 납치범을 맨손으로 제압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개봉 다음 날 바로 극장을 찾아가서 보고 나니, 이건 그냥 웃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미디 외피 안에 꽤 촘촘한 첩보 설정이 숨어 있었거든요.
걸크러쉬 액션, 생각보다 훨씬 시원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엔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엄정화 배우는 워낙 좋아해서 예전 작품들부터 꾸준히 챙겨봤는데, 코믹 연기가 아닌 '과연 본격적인 액션이 될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완전히 기우였습니다.
이 영화의 액션 연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비행기 통로처럼 움직임이 제한된 좁은 공간에서 상대방과 근거리로 맞붙는 짜임새 있는 근접 전투 기술이었습니다. 실제로 좌석 사이 좁은 틈새나 승무원들이 일하는 기내 주방 공간인 갤리를 200% 활용한 장면들이 꽤 인상적이었고, 주먹이 오갈 때마다 전해지는 타격감도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습니다.
엄정화와 이선빈 두 배우의 액션은 제가 직접 보고 나서야 "이 조합이 정말 신의 한 수였구나" 싶었습니다. 여성 주인공이 주도하는 격투 액션 영화 자체가 한국 영화에서 꽤 드문 편인데, 이 작품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밧줄이나 카트 등 기내 비품을 생활 밀착형 무기로 활용하는 재치까지 보여줍니다. 거창한 무기 없이도 좁은 공간을 꽉 채우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한 셈입니다.
알고 보니 이 영화는 1990년대 홍콩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양자경 주연의 <예스 마담>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와 존경을 담고 있더군요. 제목의 '마담'도 바로 거기서 착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예스 마담 시리즈의 세대는 아니라서 내용을 잘 알고 간 건 아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숨은 배경들을 찾아보니 극 중 연출 맥락이 훨씬 더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하이재킹 설정,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은 가족 이야기
이 영화의 핵심 줄기는 비행기 납치 사건, 즉 하이재킹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기반으로 합니다. 폐쇄된 상공의 비행기라는 특성 때문에 늘 숨 막히는 긴장감을 주는 단골 소재인데, <오케이 마담>은 이 무거운 상황을 오히려 유쾌한 코미디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확실한 차별점이 있었습니다.
설정만 떼어놓고 보면 웬만한 정통 첩보물 못지않게 복잡합니다. 전직 특수 요원 출신의 여성이 과거를 숨긴 채 새로운 신분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고, 북한 공작원은 그녀의 홍채에 담긴 비밀 핵 설계도 열쇠를 노리며 추적합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남편마저 범상치 않은 과거를 숨긴 인물이죠.
하지만 이 거창하고 복잡한 스파이 설정들이 막상 영화 안에서는 머리 아프지 않고 아주 단순하고 유쾌하게 소비됩니다. 제가 보기에 이건 감독의 의도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설정의 인과관계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데 시간을 쏟기보다, 그 설정이 만들어내는 엇박자 유머와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집중하는 방식인 거죠. <테이큰>이나 <존 윅>처럼 피 튀기는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고 가셨다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마음을 비우고 오락 영화로 접근하면 이보다 편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적대 세력, 즉 빌런들의 위협감이 충분히 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상윤 배우가 맡은 북한 공작원 캐릭터는 비주얼이나 분위기 자체는 충분히 위압적이었는데, 영화 전체의 코미디 톤 맞추려다 보니 실제 위협적인 포스가 뒤로 갈수록 희석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악당이 더 악랄하고 강해야 주인공이 역경을 뚫고 활약할 때의 쾌감이 더 빛나는데, 그 밸런스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연 승객들의 앙상블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한정된 기내 공간에서 철없는 신혼부부, 국회의원, 시어머니 등 다양한 배경의 승객들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웃음과 반전을 터뜨려 줍니다. 이른바 '신 스틸러'라 부를 만한 감초 캐릭터들이 번갈아 가며 활약해 준 덕분에 러닝타임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는 코로나로 인해 전반적으로 극장가가 정말 침체되어 있고 다들 심적으로 지쳐있던 시기였는데, 이런 시원하고 부담 없는 코미디 영화의 등장이 관객들에게 꽤나 반가운 비타민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코미디 영화로서의 완성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그래서 진짜 재밌어?"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제 답은 명확합니다. "극장 문을 열 때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감상이 완전히 달라질 영화"라는 것입니다.
<오케이 마담>의 웃음 코드는 말장난이나 세련된 티키타카보다는, 과장된 몸짓과 표정, 그리고 슬랩스틱처럼 직관적인 신체적 충돌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정통 개그 방식에 가깝습니다. 세련되고 트렌디한 대사 위주의 유머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예스러운 코미디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반대로 남녀노소 누구나 직관적으로 빵 터질 수 있는 클래식한 매력이 있습니다.
특히 제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감탄했던 건 박성웅 배우의 완벽한 캐릭터 변신이었습니다. 박성웅 배우 하면 보통날이 선 조폭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이미지가 먼저 뇌리에 스치는데, 이번에는 아내밖에 모르는 찌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연하남 남편 역할로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나타났더군요. 진중한 얼굴로 엉뚱한 코믹 연기를 능청스럽게 소화해 내는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영화의 매력과 아쉬운 점들을 몇 가지 강점으로 요약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 신선한 장르의 도전: 여성 원톱 주도의 격투 액션이라는 희소한 장르를 대중적인 한국 코미디로 매끄럽게 버무려 냈습니다.
- 한정된 공간의 미학: 비행기라는 좁은 공간적 제약이 오히려 신선하고 창의적인 생활 밀착형 액션 연출을 낳았습니다.
- 따뜻한 휴머니즘: 첩보물이라는 거창한 스케일의 뒤편에는 결국 내 소중한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에피소드가 흐릅니다.
결론적으로 <오케이 마담>이 촘촘한 개연성을 자랑하는 완벽한 웰메이드 영화는 아닙니다. 스토리 곳곳에 구멍이 보이고 악당들의 긴장감도 느슨합니다. 하지만 엄정화 배우의 화려한 액션 변신, 이선빈과의 찰떡 호흡, 그리고 박성웅의 반전 코믹 연기가 어우러져 만드는 소소한 웃음들은 킬링타임용으로서 제 역할을 다합니다. 머리 복잡한 주말,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웃고 싶은 날 선택하기에 더없이 좋은 오락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