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폭과 형사가 손을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보통 이런 설정이면 뻔한 브로맨스나 코믹 활극으로 흐르기 마련인데, 영화 <악인전>은 그 대중적인 기대를 절반쯤 비틀어버립니다. 저는 솔직히 마동석, 김무열, 김성규라는 신선하면서도 묵직한 캐스팅 라인업 하나만 보고 관람을 결정한 영화였는데, 결과적으로 극장 문을 나설 때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습니다.
허를 찌른 변주, 캐스팅이 영화를 살렸다
<악인전>은 장르적 쾌감이 강한 오락 영화로서 그 에너지와 완성도를 인정받아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한국형 범죄 액션이 국제무대에서 이 정도로 독창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를 보기 전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무엇보다 주연인 마동석 배우의 변주가 인상적입니다. 그는 이미 <범죄도시> 시리즈를 통해 친근하면서도 압도적인 '마블리'라는 강력한 이미지가 구축된 상태였죠. 이 점이 오히려 다른 작품에서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달랐습니다. <악인전>에서는 특유의 유머나 웃음기를 완전히 걷어내고, 날카롭고 냉랭한 눈빛을 유지하며 잔혹한 조직 보스 장동수를 연기합니다. 대중이 기대하는 피지컬 액션은 가져가되 내면의 온도를 급격히 낮추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이 서늘한 변주가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조직 보스에 맞서는 형사 역을 맡은 김무열 배우의 투혼도 빛납니다. 마동석이라는 거대한 벽과 스크린 위에서 팽팽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무려 15kg을 증량했다고 하는데, 단독 샷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단한 체구와 아우라에서 그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형사 정태석의 과열된 에너지는 마동석의 절제되고 묵직한 연기 톤과 완벽한 대비를 이루며 극의 텐션을 팽팽하게 유지시킵니다. 평소 선한 마스크를 가진 배우가 미치광이 같은 형사를 연기할 때 발생하는 이질감이 캐릭터의 매력을 한층 배가시켰습니다.
실화의 무게감 위에서 춤추는 세 배우의 열연
이 영화는 2005년 천안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연쇄 강력범죄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실제 사건이 금품을 목적으로 한 다수의 범행이었던 것과 달리, 영화는 오직 살인 자체에 집착하는 단독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와의 추격전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화가 가진 본래의 묵직함은 다소 옅어졌을지언정, 장르 영화로서 관객에게 전달해야 할 극적 긴장감과 장르적 쾌감은 확실하게 챙겼습니다.
연출적인 면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많습니다. 영화 초반 비 오는 날의 사건 현장을 긴 호흡으로 담아낸 롱테이크 씬이나 어두운 골목길 추격 장면 등은 명작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장르적 오마주가 엿보여 장르물 매니아들의 눈을 즐겁게 만듭니다. 또한, 극 중 성인 오락실 사업을 둘러싸고 조폭들이 이권 다툼을 벌이는 배경은 2000년대 중반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바다이야기 사태'의 시대적 맥락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극의 리얼리티를 더합니다.
스토리 자체는 조직 보스와 형사가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는 단순한 구조이기에 후반부 결말이 다소 예측 가능하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잃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건, 전적으로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 덕분입니다. 특히 연쇄살인마 강경호 역을 맡은 김성규 배우의 섬뜩한 존재감은 단연 압권입니다. 과장된 몸짓이나 고함 없이, 오직 서늘하고 공허한 눈빛 하나만으로 완벽한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표현해 냅니다. 우락부락한 덩치들 사이에서 오히려 평범하고 왜소해 보이는 인물이 뿜어내는 기괴한 공포가 이 영화의 서사를 단단하게 받쳐줍니다.
'범죄도시'의 실루엣을 벗어던진 독창적인 대결 구도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범죄도시>와 비슷한 결로 예상했다가 아쉬움을 토로하곤 합니다. 하지만 애초에 두 작품은 지향하는 서사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범죄도시>가 괴물 형사라는 독보적인 영웅을 필두로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를 직선적으로 밀어붙이는 영화라면, <악인전>은 잡아야 하는 자(형사)와 죽여야 하는 자(조폭)라는 두 명의 주인공이 연쇄살인마라는 하나의 타깃을 두고 아슬아슬한 동맹과 신경전을 벌이는 듀얼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대 성향의 두 캐릭터가 빚어내는 미묘한 균형 감각이야말로 <악인전>만이 가진 독보적인 재미입니다. 서로를 이용하면서도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긴장감이 매 장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단독 주인공 서사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입체적인 감정의 충돌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악인전>은 서사의 정교함 면에서 완벽한 명작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릅니다. 전개가 다소 직진형이고, <범죄도시> 특유의 통쾌한 한 방이나 유머러스한 청량감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무겁거나 밍밍하게 다가올 여지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웃음기를 빼고 거친 조폭으로 변신한 마동석, 이에 밀리지 않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김무열, 그리고 극의 공기를 얼려버리는 김성규가 만들어내는 삼각 편대의 시너지는 그 자체로 스크린을 가득 채웁니다. 타협 없는 거친 액션과 배우들의 날 선 연기 합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극장에 앉아 있는 시간 동안 충분히 만족스러운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웰메이드 장르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