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현재 기준,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39명 중 생존자는 단 27명이었습니다. 이 숫자를 떠올리면서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솔직히 처음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명절 특선으로 처음 봤을 때도 눈물이 났지만, 두 번째로 마주한 는 훨씬 더 뭉클하고 오래 남았습니다.
말하기까지 걸린 시간, 그리고 쌓인 서사
영화의 첫인상은 위안부 영화가 아니라 민원인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구청을 발칵 뒤집어 놓는 민원의 달인 옥분 여사가 등장하고, 9급 신입 공무원 민재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꽤 오래 이어집니다. 처음 봤을 때는 이 빌드업이 길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영화의 핵심 주제인 위안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그 이후는 빠르게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게 의도된 구조라는 걸 두 번째 관람에서야 제대로 느꼈습니다. 영화는 일종의 캐릭터 빌드업(character build-up), 즉 주인공의 내면과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관객이 옥분이라는 사람 자체를 충분히 알게 만듭니다. 여기서 캐릭터 빌드업이란 관객이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사건 이전에 캐릭터의 일상과 관계를 촘촘히 쌓아가는 서사 기법입니다. 덕분에 후반부에 그녀가 공개 증언을 결심하는 순간,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저 사람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문희 배우의 연기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억세고 쏘아붙이는 외피 아래 엄청나게 여린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 제가 이전에 영화 리뷰에서도 나문희 배우의 내공을 극찬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 감탄이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이제훈과의 케미도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좋았고요.
위안부 역사, 영화가 선택한 방식
이 영화가 다른 작품들과 구분되는 지점은 피해자 서사를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위안부라는 주제는 주제의 무게감 때문에 독립영화나 단편 형식에서 주로 다뤄져 왔습니다. 이렇게 대중적인 상업영화 포맷으로 풀어낸 경우가 흔치 않았습니다.
영화는 피해의 폭력성을 전시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신체적 상처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그 상처를 품고 살아온 한 사람의 삶과 그 삶 안에서 용기를 내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이 선택이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영화는 도대체 누굴 위해 찍은 건지 싶은 장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전시하는 방식은 때로 피해자를 다시 한번 대상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실화의 배경도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용수 할머니의 실화를 모티프로 합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미국 의회에서 직접 증언을 한 분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영화 속 공개 청문회 장면은 이 실제 역사적 증언을 배경으로 합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보면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되 법적 책임은 부정하는 방식을 유지해 왔습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10억 엔이 거론되었지만, 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개별 피해자의 동의 없이 국가 대 국가로 처리된 합의라는 점에서 지금도 논쟁이 계속됩니다. 전쟁범죄(war crime)란 교전 중 민간인 또는 포로에게 가해진 불법 행위를 의미하며, 국제법상 시효가 없는 범죄로 분류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피해자의 동의 없이 국가 간 합의만으로 이 문제를 종결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갖습니다.
이 영화가 필요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위안부 역사를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서사 구조로 풀어낸 거의 유일한 상업영화
- 피해자를 동정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 주체로 그린 서사적 선택
-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폭력을 전시하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한 연출 방향
영화 한 편이 남기는 것, 그리고 우리의 역할
영화의 마지막 청문회 장면은 두 번 봐도 벅찹니다. 옥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는 그 순간, 극장 안이 고요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대한 행위인지, 이 영화는 그것을 잊지 않게 만듭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실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음성이 삽입된다는 점도 언급하고 싶습니다. 쿠키 영상은 없지만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 음성은 영화의 연장선이 아니라 현실의 연장선입니다.
역사적 과오에 대한 사과는 시간이 지난다고 그 필요성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증언할 수 있는 분들이 줄어들수록 이런 영화의 역할은 더 커집니다. 현재 위안부 피해자 지원과 역사 기록 사업은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이어가고 있으며, 관련 기록과 역사 자료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또한 위안부 피해자 등록과 생존자 현황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여성가족부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출처: 여성가족부).
집에서 TV를 틀 때마다 이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뻔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이고 지금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사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냥 모두가 봐야 하는 한국영화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이라도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