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개봉 이후 20년이 넘도록 일본 영화 역대 흥행 1위를 지키고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동시에 거머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입니다. 저는 어릴 때 이 영화를 보고 막연히 무섭다고만 느꼈는데, 성인이 되어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부모가 돼지로 변하고, 10살 소녀가 낯선 세계에서 이름을 빼앗긴 채 노동해야만 살아남는 이 작품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었습니다.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 상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구조, 그리고 자아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은유적으로 담아낸 성장 서사였습니다.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의 진짜 의미
유바바가 치히로와 계약을 맺으며 이름을 빼앗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 메타포(Metaphor)입니다. 여기서 메타포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른 대상에 빗대어 의미를 전달하는 수사법을 뜻합니다. 치히로는 '센'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하쿠 역시 자신의 본래 이름인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를 잊은 채 유바바의 지배 아래 놓입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정체성(Identity)의 상징이며, 여기서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를 의미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이름 대신 역할로 불립니다. 직급, 직책, 성과 지표, 심지어 '몇 번 고객'이라는 숫자로 호명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회사 생활을 하며 제 이름보다 '팀장님', '담당자님'으로 더 자주 불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점차 뒤로 밀려났습니다.
영화 속에서 센이 끝까지 자신의 본명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은 자아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입니다. 하쿠가 센에게 "네 본명을 잊으면 돌아갈 길을 잃는다"라고 경고하는 장면은, 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던지는 경고처럼 들립니다(출처: 일본영화데이터베이스). 실제로 계약서에 치히로가 자신의 이름 '千尋'을 '千'로 잘못 쓰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이미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암시하는 섬세한 연출이었습니다.
노동과 성장, 그리고 생존의 서사
센이 일하는 유야(油屋, 아부라야)는 겉보기엔 신들을 위한 온천장이지만, 실상은 철저한 노동 현장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동물로 변한다는 유바바의 으름장, 인간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 그럼에도 묵묵히 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는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보며 센이 오물신을 씻겨주는 장면에서 묘한 공감을 느꼈습니다. 아무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더럽고 힘든 일을 떠맡았을 때, 그 일을 끝까지 해내며 얻는 성취감과 인정. 센은 오물신의 몸속에 박힌 자전거 핸들을 발견하고, 온천장 식구들과 함께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뽑아냅니다. 오물신은 사실 강의 신(河神, 가와노카미)이었고, 여기서 가와노카미란 일본 신화에서 강과 물을 관장하는 신령을 뜻합니다. 깨끗해진 신은 센에게 요상한 경단을 선물하는데, 이 경단은 나중에 하쿠와 가오나시를 구하는 핵심 아이템이 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이 "10살 소녀가 고난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치히로가 갖고 있던 잠재력이 발현되는 과정"이라고 밝혔습니다(출처: 스튜디오지브리 공식자료). 저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센은 처음부터 용기가 없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용기를 발휘할 상황이 없었을 뿐입니다. 노동 현장에서 센은 자신의 말에 힘을 싣는 법을 배웁니다. "여기서 일하게 해 주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순간, 유바바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계약이 성립됩니다. 말의 힘(言霊, 코토다마)이야말로 이 영화가 강조하는 핵심 가치입니다.
자본주의와 환경 파괴에 대한 은유
유야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웅장한 온천장이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가 작동합니다. 유바바는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며, 손님(신)이 가져다주는 금을 축적하는 데 혈안입니다. 센이 씻겨준 강의 신은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뒤덮여 오물신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는 환경오염(Environmental Pollution)에 대한 직접적인 메타포이며, 여기서 환경오염이란 인간 활동으로 인해 자연 생태계가 훼손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의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 이면에 희생된 자연을 지속적으로 작품에 담아왔습니다. 하쿠의 정체가 '코하쿠강'이라는 강의 신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치히로가 어렸을 때 빠졌던 강, 그 강은 이미 메워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하쿠는 자기 본래의 모습을 잃은 채 유바바의 부하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센이 하쿠에게 "넌 코하쿠강이야"라고 말해주는 순간, 하쿠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용의 비늘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한국의 청계천 복원 사업을 떠올렸습니다. 한때 복개되어 사라졌던 청계천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출처: 서울시 청계천복원추진본부). 영화 속 하쿠가 이름을 되찾는 과정은,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과 기억을 되찾는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또한 유야의 모델이 된 도고온천(道後温泉)은 일본 에히메현 마쓰야마시에 위치한 3000년 역사의 온천입니다. 제가 직접 방문했을 때,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과 뜨거운 온천수가 인상적이었지만, 동시에 관광 상품화된 모습도 함께 보였습니다. 전통과 자본주의가 충돌하는 그 공간이, 유야라는 환상적인 온천장의 원형이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볼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모험담으로, 청소년기에는 성장기로, 어른이 되어서는 정체성과 노동, 환경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이 영화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아직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저는 이 질문 앞에서 여전히 답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센이 터널을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오는 여정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