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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리뷰 (실화, 마석도, 장첸)

by yooniyoonstory 2026. 5. 26.

범죄도시 영화 포스터


처음 범죄도시를 봤을 때 "또 조폭 영화네" 싶었습니다. 2000년대 초 충무로를 휩쓸었던 그 장르가 돌아온 것 같아 큰 기대 없이 앉았는데, 두 시간 후엔 완전히 생각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마석도라는 캐릭터 하나가 그 모든 선입견을 날려버렸고, 장첸이 등장하는 순간부터는 손에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실화가 만들어낸 설득력, 그 배경부터 짚어야 합니다

범죄도시는 단순한 창작물이 아닙니다. 금천경찰서 강력 1반에서 실제로 활동했던 윤석호 형사가 담당했던 두 사건, 즉 왕건이파 조선족 14명의 살인미수 혐의 구속 사건과 가리봉동 연변 조직 흑사파 검거 사건을 합쳐 각색한 작품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봤을 때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세트라고는 믿기 힘든 가리봉동 연변거리의 질감, 쪽방 골목의 습기 같은 분위기가 납득이 됐습니다.

여기서 로케이션 헌팅(location hunting)이란 촬영지를 사전에 답사하고 섭외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범죄도시는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 예정이었던 실제 가리봉동 거리를 오픈 세트처럼 활용했는데, 이 선택이 영화 전체의 리얼리티를 결정적으로 높였습니다. 스튜디오에서 꾸며낸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장사하던 거리였으니까요.

90년대 말부터 한국에 이주한 중국 동포들이 가리봉동에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동북삼성에서 활동하던 조선족 조직이 자연스럽게 유입됐다는 배경도 영화 속에 녹아 있습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그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도 모두 같은 동네 사람이라는 구조가 이 영화를 단순한 선악 대결로 읽히지 않게 만드는 힘입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범죄도시는 청소년 관람 불가(청불) 등급 한국 영화 흥행 순위에서 내부자들, 친구에 이어 688만 관객으로 3위를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마석도라는 캐릭터가 왜 유일무이한가

저는 마석도 형사 캐릭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행동의 즉각성이었습니다. 당구장 옆 골목에서 칼부림이 났다는 소식을 통화 중에 듣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서 상황을 정리하는 첫 장면부터, 이 캐릭터는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키타입(character archetype)이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형적 인물 유형을 의미합니다. 마석도는 기존 한국 범죄 영화의 형사 아키타입과 명백히 다릅니다. 신세계, 베테랑, 내부자들을 거치며 경찰과 조폭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방향으로 흘렀던 충무로의 흐름 속에서, 마석도는 명확하게 경찰 편이고 강하고 유머러스합니다. 그런데 이게 전혀 촌스럽지 않습니다.

마동석 배우가 가진 실제 체격과 힘이 캐릭터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이 결정적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경우는 드뭅니다. 배우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배우 안에서 살아있는 느낌, 그게 마석도였습니다. 마블 어벤저스 시리즈 제작진이 이 영화의 길거리 액션을 참고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마석도 캐릭터를 설계할 때 참고한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 드라마 쉴드(The Shield)의 빅 맥키 캐릭터: 강인하면서 유머러스한 형사의 원형
  • 실제 윤석호 형사의 현장 경험: 걸음걸이, 말투, 직감적 범인 식별 능력
  • 마동석 배우 본인의 체격과 타고난 연기 스타일: 과장 없이 툭툭 치는 자연스러움

장첸 캐스팅이 신의 한 수였던 이유

윤계상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장첸이 떠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다정하고 신사 같은 이미지로 각인된 배우가 한국 범죄 영화 역사에서 손꼽히는 공포스러운 빌런을 연기한다니, 제작사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전복형 캐스팅(against-type casting)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전복형 캐스팅이란 배우가 기존에 가진 이미지와 정반대의 역할을 배치함으로써 관객의 예상을 깨고 신선함을 주는 캐스팅 전략입니다. 장첸은 이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한 사례입니다.

윤계상 배우 본인도 어마어마하게 준비했습니다. 현장에 자신의 촬영 분량이 없는 날에도 나타나 카니발 안에서 연습했다는 이야기, 상 뒤집는 장면이나 연변 사투리 억양을 혼자서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몰입도가 화면에서 그대로 느껴졌다는 것이 납득됐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장면이 장이수 어머니 회갑연에서 소화기 연기를 헤치고 등장하는 장면이었는데, 롱테이크로 찍힌 그 액션이 단 다섯 번의 촬영으로 완성됐다는 사실도 놀라웠습니다.

장첸 캐릭터의 핵심은 동기 부재입니다. 초기 시나리오에서는 장첸에게도 조직 재건이라는 목적이 있었는데, 감독이 이를 의도적으로 걷어냈습니다. 악인에게 명분을 주면 관객이 동정하게 된다는 판단이었고, 그 결과 장첸은 그냥 무섭습니다. 이유 없이, 설명 없이.

조연 앙상블이 완성한 범죄도시의 질감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지점이 이 부분입니다. 삼국지처럼 여러 세력이 맞부딪히는 구조를 좋아하는 편인데, 범죄도시는 그 욕구를 아주 잘 채워줬습니다. 독사파 두목 안성태(허성태), 이수파 두목 장이수(박지환), 그리고 장첸 삼인방의 위성락(진선규)과 양태(김성규)까지, 이들의 세력 다툼이 단조롭지 않고 각자의 색깔이 있었습니다.

특히 진선규 배우는 이 영화 이전까지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연극배우로, 많은 사람들이 처음 볼 때 실제 중국 동포가 아닌지 의심했을 정도로 연변 카페 분위기를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오디션에서 한 번 탈락했다가 재오디션을 요청해서 기회를 잡은 이야기도 그 절실함이 화면에 그대로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용을 수련한 배경이 있어서 액션의 곡선이 남다르다는 점도, 알고 보면 위성락의 움직임이 왜 그렇게 눈에 들어왔는지 설명이 됩니다.

앙상블(ensemble)이란 여러 배우가 균형 있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집단 연기 방식을 의미합니다. 범죄도시는 이 앙상블이 주연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대사 몇 마디 없는 단역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연기를 보여줬고, 그것이 가리봉동이라는 커뮤니티가 실제로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 토대였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범죄 영화의 흥행 요인으로 앙상블 캐스팅과 캐릭터 다양성이 핵심 지표로 꼽히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범죄도시는 결국 뻔하다면 뻔한 구조의 영화입니다. 강한 형사가 악당을 잡는다는 이야기, 누가 이길지 관객은 처음부터 압니다. 그런데도 두 시간 내내 화면에서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이건 스토리가 아니라 사람의 힘입니다. 마석도의 매력에 빠져서, 장첸이 등장할 때마다 긴장해서, 조연 하나하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되어서 보게 됩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1편부터 순서대로 보시길 권합니다. 마석도가 왜 시리즈가 됐는지, 보고 나면 납득이 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85_T9HHE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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