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사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그 검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놈이라면, 우리는 그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까요? 저는 반신반의하면서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결론적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한재림 감독의 영화 '더 킹'은 한국 정치 스릴러 장르에서 꽤 드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정의로운 검사'가 아니라, '권력에 중독된 검사'의 시선으로 현대사를 훑는 방식입니다.
타락한 주인공이라는 설정, 불편한가 매력인가
영화의 주인공 박태수는 처음부터 대단히 솔직한 인물입니다. 검사가 되고 싶은 이유가 정의 구현이 아니라, 진짜 힘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이걸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충분히 있습니다. 주인공이 공감 가능해야 몰입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박태수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거부감을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 설정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봅니다. 한국 영화에서 검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면 보통 처음에는 순수했다가 점차 타락하는 서사를 밟습니다. 일종의 '원죄 없는 출발'이 기본값처럼 굳어 있었죠. 그런데 '더 킹'은 그 공식을 처음부터 뒤집습니다. 박태수는 처음부터 권력을 원했고, 그걸 숨기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채택한 방식은 내러티브 구조상 1인칭 고백체(Confessional Narration)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고백체 서술이란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직접 들려주는 방식으로, 관객이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 안으로 끌려 들어가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덕분에 박태수의 선택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왜 그 선택을 했는지는 이해하게 됩니다. 공감과 이해는 다른 감정이라는 걸 이 영화는 꽤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조인성과 정우성, 두 배우가 만들어낸 긴장의 밀도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두 배우의 신경전이었습니다. 조인성은 10대 풋내기 시절부터 40대 중년의 무게감까지를 한 편 안에서 소화했는데, 솔직히 이 정도 감정 진폭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가져가는 배우가 많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정우성이 연기한 한강식이라는 캐릭터. 이 인물은 단순한 악당이 아닙니다. 검찰 내 권력 네트워크의 정점에서 정치권과 언론, 조직폭력배까지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인물인데, 정우성이 이걸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우아한 태도 안에 야비함을 숨겨두는 방식으로 연기합니다. 권력자들이 실제로 저렇게 생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묘한 사실감이 있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펜트하우스에서 군무를 추는 장면, 저는 그 장면에서 웃다가 갑자기 씁쓸해졌습니다. 감독이 권력자들의 공간을 지하 밀실이나 음침한 배경이 아니라 화려하고 아름다운 펜트하우스로 설정한 건 의도적인 선택입니다. 혐오스럽게 보여주는 것보다 부러워 보이게 만드는 것이 더 무서운 비판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장면에서 체감했습니다.
영화 비평의 시각에서 이 장면은 카니발레스크(Carnivalesque) 기법에 해당합니다. 카니발레스크란 권력자나 지배 계층의 위엄을 풍자와 웃음으로 전복시키는 문학적·영상적 기법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진지해야 할 자리에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권력의 허상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더 킹'은 이걸 세련된 영상미 안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꽤 수준 높은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 중독, 영화적 과장이 아닌 실제 연구 결과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건 사실 스토리보다 '권력 중독'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영화 안에서 박태수의 욕망 구조를 설명할 때 이 개념이 핵심으로 작동합니다. 처음 검사로서 힘을 행사하는 순간, 그는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점점 더 큰 권력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게 단순한 영화적 은유가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권력을 경험할 때 인간의 뇌에서는 도파민(Dopamine)이 분비됩니다. 도파민이란 쾌감과 동기 부여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약물 중독자가 마약 복용 시 느끼는 쾌감과 유사한 신경 경로를 자극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심리학자 대처 켈트너(Dacher Keltner)는 오랜 연구를 통해 권력이 사람의 공감 능력을 저하시키고, 윤리적 판단력을 마비시킨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출처: UC Berkeley Greater Good Science Center).
그러니까 한강식과 박태수가 점점 더 대담한 악행을 저지르는 과정이, 사실 그렇게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닌 겁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픽션인가, 다큐인가' 싶은 묘한 감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설명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이 뉴스에서 봤던 수많은 사건들과 너무 닮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한국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를 보면, 정치·법조 스릴러 장르는 2010년대 중반부터 관객 수가 꾸준히 증가했으며, 특히 2017년을 전후로 관련 영화들이 대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는 현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불신이 극장으로도 이어졌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열린 결말이 던지는 질문, 불친절인가 정직함인가
이 부분은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영화의 열린 결말을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낀다는 걸 압니다. 악당들이 처벌받긴 하지만 그 수위가 미약하고, 주인공 박태수의 미래도 확정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결말이 오히려 정직하다고 봅니다. 현실에서도 권력형 비리의 결말은 종종 흐릿하게 끝나니까요. 영화가 통쾌한 응징으로 마무리됐다면 극장을 나서는 순간 다 잊어버렸을 겁니다. 하지만 박태수가 마지막에 관객을 바라보며 건네는 대사는 극장 밖으로도 따라옵니다.
'더 킹'이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권력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 그 권력을 감시하고 결정하는 것은 결국 시민이다
이 세 가지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이고, 마지막 장면은 그 결론을 관객에게 직접 던지는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영화가 대신 답해주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 엔딩이 저에게 꽤 오래 남은 이유는, 영화 바깥의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날로 먹으려는 이들이 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과와 비교가 성실함을 자꾸 평가절하하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일에 충실히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은 돌아간다"는 대사 한 줄이 묘하게 위안이 됐습니다.
유쾌하고 빠르게 달리면서 묵직한 질문 하나를 남기는 영화를 찾는다면 '더 킹'을 권합니다. 단, 보고 나서 뉴스를 보면 기분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점은 미리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