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4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끝까지 간다'. 처음 봤을 때, 딱 10분 만에 "이거 보통 영화가 아니다" 싶었습니다. 관에 시체를 숨긴다는 설정, 현실적으론 말이 안 되는데 이상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 기묘한 개연성이 저를 111분 동안 꼼짝 못 하게 붙들었습니다.
관 속 시체, 그 기발한 설정이 나온 배경
김성훈 감독이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귀향'이었다고 합니다. 여주인공이 남편 시체를 냉장고에 숨기는 장면을 보다가 "절대 걸리지 않는 방법은 뭘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이 어머니 관 속이었던 겁니다.
제가 직접 처음 그 설정을 접했을 때 느낀 건, 불가능인 듯 불가능 아닌 그 묘한 지점이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찾아야 하는 아이디어의 영역이 딱 거기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허황되면 몰입이 깨지고, 너무 현실적이면 재미가 없는 법이니까요.
영화의 초고 제목은 '더 바디'였다가 '무덤까지 간다'를 거쳐 지금의 제목이 됐습니다. '무덤'이라는 단어가 장르 코드(genre code)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판단이 있었고, 어두운 이미지가 관객의 첫인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습니다. 여기서 장르 코드란 관객이 영화를 보기 전 포스터나 제목만으로 작품의 분위기와 성격을 짐작하게 되는 시각적·언어적 신호를 뜻합니다. 제목 하나가 관객의 기대치를 통째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이 사례가 잘 보여줍니다.
크레딧 도입부의 연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완전한 블랙 화면 위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며 타이틀이 연결되는데, 주인공 건수가 무덤을 팔 때 땅속으로 들어오는 빛이라는 설정입니다. 본인의 죄를 조금씩 파 나간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는데, 저는 이런 세심한 미장센(mise-en-scène)이 좋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배우의 위치, 소품, 카메라 앵글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하는 영화 연출 개념입니다. 이 영화는 오프닝부터 그 미장센이 살아 있었습니다.
블랙 코미디와 서스펜스, 그 팽팽한 줄타기
솔직히 이 영화에 큰 반전은 없습니다. 관객이 예상하는 대로 착하게 굴러갑니다. 근데 이상하게 뻔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그게 이 영화의 진짜 실력입니다. 예상을 빗나가서 재미있는 게 아니라, 예상하는 얘기를 지루하지 않게 펼쳐내는 정교한 장치들 덕분에 몰입이 유지되는 겁니다.
그 핵심에 서스펜스(suspense)와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의 교차 편집이 있습니다. 서스펜스란 관객이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드는 극적 긴장감의 기법이고, 블랙 코미디란 죽음, 범죄, 도덕적 타락 같은 어두운 소재를 유머로 풀어내는 장르 기법입니다. 감독은 이 두 가지를 쉴 틈 없이 교차시켜 관객이 긴장과 웃음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게 설계했습니다.
주민번호를 14자리로 말하는 에피소드, 폭죽이 예상보다 훨씬 크게 터지는 장면, 그리고 군인 인형이 끈을 끌고 나오는 순간. 제가 영화관에서 혼자 피식 웃었다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 다시 심장이 쫄아드는 경험을 반복했습니다. 3,000원짜리 인형 네 개를 사다가 소품팀이 개조하고 총소리까지 크게 해서 결국 85만 원짜리 인형으로 업그레이드됐다는 뒷이야기를 알고 나니, 그 장면이 더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재즈왈츠 넘버 2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 관 속에서 그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을 때, 저는 당연히 죽은 남자의 핸드폰 벨소리겠거니 했습니다. 근데 정각 12시를 알리는 벽시계를 비추는 컷이 나오는 순간, 오호라, 하며 미소가 번졌습니다. 원래는 니노 로타의 '태양은 가득히'를 쓰려했으나 사용료가 배우 개런티보다 비싸서 무료 클래식으로 선택했다는 게, 결과적으로 훨씬 좋은 선택이 됐습니다.
이 영화에서 체크하면 좋은 연출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크레딧 빛 연출: 무덤을 파는 주인공의 상황과 연동된 도입부 시각 설계
- 인형 장치: 자연스러운 공포와 코미디를 동시에 유발하는 소품 활용
- 쇼스타코비치 음악: 조진웅 등장 씬에서 로우 템포로 임팩트를 극대화한 음향 연출
- 편집 리듬: 긴장감을 끌어올리다가 코믹 씬으로 환기하는 교차 편집 구조
한국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끝까지 간다'는 2014년 개봉 당시 국내 총 관객 344만 명을 기록했으며, 이후 중국, 프랑스, 필리핀, 일본 등 다수 국가에서 리메이크 판권이 팔렸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장르 영화가 해외 리메이크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문 만큼, 이 작품의 완성도가 어느 수준이었는지를 방증하는 수치입니다.
엔딩이 이 영화를 완성한 이유
조진웅이 물에 빠져 고요하게 잠기는 것으로 영화가 끝났다면, 솔직히 저는 맥 빠진 사이다라고 느꼈을 겁니다. 악당이 너무 쉽게 제거되면 그건 관객 농락이니까요. 조진웅이 다시 기어 나와 이선균 집으로 쳐들어갈 때, 저도 이미 그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문 밖에 그가 서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두근거렸으니,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힘입니다.
그런데 진짜 엔딩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이선균이 면죄부를 받고 경찰서를 나오는데, 향하는 곳이 돼지금고였습니다. 모든 위기를 헤치고 결국 돈 챙기러 가는 그 결말. 허를 찔린 듯 웃음이 터지면서도,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 한번 선명하게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화의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 즉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지배적 분위기와 표현 방식이 마지막 프레임까지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엔딩은 퍼펙트합니다.
청룡영화상 각본상과 대종상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한 배경도 결국 이런 완성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출처: 청룡영화상 공식 사이트). 잘 만든 오락 영화란 뭔지를 이 작품이 단단하게 보여줍니다.
요즘 이런 영화가 왜 없을까, 하는 생각이 영화를 다시 떠올릴 때마다 듭니다. 복잡한 메시지도 없고, 심오한 철학도 없는데, 111분을 단 한 번도 눈 돌릴 틈 없이 보게 만드는 그 힘. 고 이선균 배우를 생각할 때마다 이 영화가 함께 떠오르는 건, 그래서인 것 같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지금이라도 찾아보실 것을 권합니다.